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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Wiz(2004-11-17 14:30:20, Hit : 7557, Vote :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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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tBlue 설립자 David Nelleman의 성공비결



Flying High

- JetBlue 설립자 David Nelleman의 성공비결

저 자 : James Wynbrandt
발 행 : John Wiley & Sons
정 가 : $24.95
MAIN IDEA

미국의 저가할인 항공사 JetBlue는 2001년에 설립되어 저가와 양질의 서비스 공존을 가능하게 했다. 시작단계부터 충분한 자본금을 확보했으며 전부 신형 항공기로 운항했고 많은 IT투자를 통한 비용절감과 업무 효율화를 이루었다. 또한 최고의 직원을 채용해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JetBlue의 설립자인 David Neeleman이 항공업계에 파장을 몰고 오며 성공가도를 달릴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성공 배후에는 다음과 같은 14가지 성공 원칙이 숨겨져 있다.
    1. 내가 가장 열정을 느끼는 일에 집중하라
    2. 언제나 남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생각하라
    3. 최고 전문가와 같이 일을 하라
    4. 현상유지에 급급하지 말고 언제나 새로운 것을 시도하라
    5. 남들보다 언제나 우수한 것을 제공한다
    6. 언제나 충분한 자본금을 갖고 사업을 한다
    7. 회사의 직원들을 진심으로 아껴라
    8. 고객을 존중해야 한다
    9. 실수를 저지르면 곧 이를 시인하라
    10. 세세한 사항에 관심을 기울여라
    11. 비용절감을 할 때 주의를 기울여라
    12. 기술을 최대한으로 활용한다
    13. 세간의 관심을 끄는 행동을 하라
    14. 회사의 핵심적 가치를 계속 유지 발전시킨다

David Neeleman은 부친이 UPI의 중남미 지국장으로 잠시 근무할 당시 1959년 10월 브라질의 상파울로에서 태어났다. Neeleman의 가족은 그가 다섯 살이 되던 해에 고향인 유타州 솔트레이크시티로 돌아왔다. 그 당시 Neeleman은 영어보다도 포르투갈어에 능숙했기 때문에 학교에 적응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특히 그는 주의가 산만했기 때문에 더욱 더 힘들었다.

Neeleman이 아홉 살 되던 해 할아버지가 운영하던 편의점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그는 고객 만족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실감할 수 있었다. 할아버지는 자신의 고객을 만족시키는 데 크게 신경을 썼다. 예를 들어 어떤 고객이 미처 편의점에 갖다 놓지 못한 물건을 찾을 경우 도넛과 커피를 접대하며 시간을 끈다는 것이다. 그 사이 손자에게 다른 슈퍼마켓에서 필요한 물건을 사오도록 시켰다. 그렇게 할아버지는 Neeleman에게 고객을 절대로 실망시켜선 안된다는 교훈을 몸소 보여줬던 것이다.

Neeleman은 주의가 산만하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에너지가 흘러 넘쳤다. 1977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유타주립대에 진학해 회계학을 공부했다. 그러면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며 학교 농구팀 매니저 일을 맡기도 했다. 그러나 별로 오래 가지는 못했다. 그가 열 아홉 살이 됐을 때 몰몬교(Mormons) 선교사로 2년간 일을 하기로 작정했기 때문이다. 그는 선교사 자격으로 브라질에 가게 됐다.

1980년 선교사 활동을 마치고 유타주립대에 복학을 했다. 2학년 때 회계학 강의를 듣던 한 친구가 그에게 하와이에 있는 누군가의 모친이 호텔을 개수하여 콘도로 만들었으나 이를 판매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얘기를 들려줬다. 그 얘기를 듣고 Neeleman은 곧 콘도 주인에게 전화를 걸어 임대를 하지 못한 방을 자신에게 주면 매주 125달러를 지불하겠다고 약속했다. 둘은 쉽게 합의를 하고 Neeleman은 지역신문에 이를 광고하기 시작했다. 이 작은 사업은 얼마 가지 않아 매주 500달러나 되는 수익을 올림으로써 대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그는 또 여행사업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고 하와이 할인 티켓을 판매하는 여행사를 차렸다.

대학 3학년이 됐을 때 Neeleman의 여행사는 이미 20명의 직원을 두고 연간 8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리고 있었다. 그는 부모가 말리는 것도 무릅쓰고 이 여행사 운영에 전념하기 위해 학교를 중퇴하기로 했다. 그러다가 1983년 Neeleman이 거래를 하던 항공사 중 하나였던 Hawaii Express가 파산을 하면서 그가 저렴한 좌석을 얻기 위해 미리 지불했던 대금을 모두 떼이게 되었다. 그간 이 여행사는 한 푼의 부채도 없었지만 한 번의 큰 실수로 인해 파산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 때 Neeleman의 나이는 스물 넷이었다.

Neeleman의 여행사가 문을 닫았다는 소문이 퍼지자 곧 유타州 최대의 여행사를 운영하던 June Morris는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당시 Morris Travel은 100명의 직원을 둔 연간 5천만 달러 규모의 회사였다. 그녀는 Neeleman에게 그동안 판매하던 저렴한 여행패키지 상품을 자신의 회사에서 일하면서 계속 팔 수 있게 해주겠다는 호의적인 제의를 했다.

Morris Travel의 명성을 등에 업고 Neeleman은 하와이 휴가여행 패키지를 계속 팔기 시작했다. 그 당시 솔트레이크시티에서 하와이행 항공편 중에서 할인 가격을 제시하는 경우는 하나도 없었던 까닭에 Neeleman과 Rick Frendt (June Morris의 아들이자 Morris Travel의 대표)는 하와이에서 Hawaiian Airlines의 부사장을 만나기로 했다. 이곳에서 두 사람은 뭔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Hawaiian Airlines는 DC-8기종을 일주일에 하루동안 운행하지 않고 격납고에 보관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항공편을 목요일 밤에 솔트레이크시티로 운행하고 금요일 아침 다시 하와이로 돌아오는 스케줄을 짜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했다. 204개 좌석을 갖는 항공편을 5월부터 9월까지 운행한다는 것이 목표였다. 그러나 이 좌석을 모두 채우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Neeleman은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대답했다. 이 친구는 언제나 그랬다." - Rick Frendt
이들이 판매하는 여행 패키지 상품은 일반 상품에 비해 몇 백 달러나 저렴했지만 이를 다 판매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이들은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매주 첫 20~40명 고객에 대해 추가 할인을 제공하는 방법을 썼다. 다른 여행사들은 솔트레이크시티에서 호놀룰루까지 왕복 티켓을 800달러에 판매했지만 Morris Travel은 같은 티켓을 399달러에 팔고 호텔 룸은 하루 20달러에 판매했다.

Hawaiian Airlines은 DC-8기종을 정기항공편에서 빼내어 Morris Travel에서 전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전세기로 쓸 것을 제의했다. Neeleman뿐만 아니라 Frendt와 Morris는 모두 이런 제안을 적극 받아들였고 당장 솔트레이크시티-LA를 연결하는 주 3회 항공편을 개설했다. 당시 Western Airlines는 이 노선 편도로 200달러를 받고 있었지만 Morris Travel은 대신 59달러(세금별도)를 받기로 했다. 머지 않아 Morris Travel의 전화는 불통이 될 정도로 고객 문의가 쇄도해서 전화 문의에 답변하는 직원을 여섯 명이나 고용해야 했다. 이들은 원탁에 둘러앉아서 몰려드는 주문에 전화를 받으면서 항공 티켓까지 직접 써야 했다.

Morris Travel은 폭주하는 업무를 부담할 수 없을 정도가 됐다. 결국 손으로 직접 티켓을 쓰는 방법은 효율적이지 못하다고 판단했고 예약과 티켓 인쇄를 자동으로 해주는 소프트웨어를 구입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이 자동 시스템이 출발 항공편만 처리가 가능할 뿐 돌아오는 항공편은 처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아무도 알지 못했다. 이에 따라 Morris Travel은 이 시스템 가동 첫 두 주 동안 각 항공편을 50%나 예약을 더 해야만 했다.


1984년 말 Hawaiian Airlines의 DC-8기는 정부 소음규제에 걸려서 결국 비행부적합 판정을 받게 됐다. 그러나 Morris Travel은 그간 쌓인 자신감에 근거하여 다른 기종을 갖고 전세기 사업을 계속하게 된다.

Morris Travel은 전세기의 승객 점유율을 항상 95% 수준을 유지하여 업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 당시 Neeleman은 1984년 사업을 시작한 할인 항공사 People Express의 사업방식을 주의 깊게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는 곧 장거리 항공편 운영을 통해서는 수익을 올리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Morris Travel에서 보이지나 스포케인 같은 주변의 도시로 단거리 노선에 사업을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논리는 June Morris에게도 적용되었다. 그녀는 당시 원래 운영하던 여행사를 매각하고 새로 설립한 Morris Air 사업에만 거의 전념하고 있었다.

1990년 초 Morris Air는 매주 300편의 항공편을 운행하고 있었으며 이 가운데는 알래스카행 노선도 있었다. 이에 대해 Alaska Airlines는 연방 교통부에 항의를 하면서 Morris Air도 전세기에 적용되는 규제보다는 정기항공편에 적용되는 엄격한 규제가 주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이 항의에 정부는 동의했고 Morris Air는 10만 달러의 벌금을 물게 됐다. 어쩔 수 없이 Neeleman은 정기항공편 운항업체에 걸맞는 경영팀을 구성하고 규제에 따르는 모든 서류작업을 수행해야 했다.

Neeleman은 자신의 첫 사업이 자본부족으로 파산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 새로운 회사도 많은 자본이 필요하다고 June Morris에게 역설했다. 특히 예상치 못한 사태에 대처하기 위해 비상시 자금으로 1,400만 달러가 필요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June Morris의 남편 친구 중 한 사람은 그런 스폰서로 가장 적합한 사람이 Michael Lazarus라고 알려줬다. Lazarus는 샌프란시스코 소재 벤처캐피탈 회사인 Weston Presidio의 공동설립자였다. Lazarus는 June Morris와 David Neeleman을 함께 만났고 곧 의기투합하여 1,400만 달러를 쉽게 조달할 수 있었다. Lazarus는 Morris Air의 사외이사로도 영입됐다.

1992년에 Morris Air는 공식 항공사로 출범할 수 있었다. Neeleman은 회사 대표로 추대됐고 Rick Frendt는 회장, June Morris는 CEO로 임명됐다. 1993년 초 Morris Air는 보잉 737기종 23대를 갖는 중간 규모 항공사가 됐던 것이다. 이 회사는 곧 독특한 방식의 경영철학을 가진 괴짜 회사라는 명성을 얻었다. 예를 들어 Morris Air는 다른 항공사들처럼 American Airline의 예약시스템을 사용하지 않고 자체적인 컴퓨터 기반 예약시스템을 개발, 사용했다.

Morris Air의 예약시스템을 개발한 David Evans는 4개월 만에 이 시스템을 제대로 작동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당시 American Airline은 자사의 예약시스템을 Sabre Airline Automated System (SAAS)이라고 불렀으며 Morris Air는 이와 경쟁하기 위해 Morris Air Reservation System (MARS)이라고 명명했다. Neeleman은 이 시스템이 종이 티켓을 인쇄하지 않고도 모두 전자방식으로 처리가 가능할 것이라 판단하여 이를 구현하기 위해 이 시스템 가동을 한 달이나 늦추고 새로운 기능을 개발했다. 사실 이런 방식은 그 당시 어떤 항공사도 생각하지 못한 것이었다. 이런 방식을 운영함에 따라 생기는 부수적인 효과는 Morris Air에서 모든 항공편 관련 정보의 실시간 파악이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종이 티켓을 필요로 하지 않는 여행은 상당한 이점을 갖고 있는 것이 분명했으나 과연 고객들이 여기에 얼마나 호응할 것인지가 문제였다.

Morris Air는 이것말고도 상당히 기발한 아이디어를 실행하기도 했다. 이 회사는 예약업무 담당 직원들을 수용할 공간이 항상 부족했다. 당시 Neeleman이 제과회사에서 스카우트했던 Carla Mein은 Morris Air의 운영담당 이사를 맡고 있었다. 그녀는 AT&T에서 주최하는 컨퍼런스에 참석해서 재택근무를 처음 하게 됐다. 그녀는 이 아이디어에 상당한 호감을 느꼈다.
    "내가 그 세미나에 참석했을 때 집에서 편안하게 일을 하는 수많은 예약담당 직원들의 모습이 머리에 떠올랐다. 나는 회사에 돌아와 '이거야말로 우리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라고 외쳤다. 그러나 Neeleman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내 주장을 굽히지 않았고 그는 결국 '그래 한 번 그렇게 해보자'라고 양보를 했다. 우린 20명의 예약 직원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고 그 결과 생산성이 15% 올랐으며 모두가 대만족 했다." - Carla Mein
얼마 가지 않아 Morris Air가 계속 성장하려면 항공기 임대를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고 대신 자체 소유 항공기를 매입해야 한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그것은 현재의 자본금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래서 1993년에 회사 상장 계획이 차례로 진행됐다. 이제 Morris Air는 연간 2억 5천만 달러의 매출에 흑자를 보는 회사였다.

Morris Air를 상장하는 계획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회사의 경영팀은 Southwest Airlines에 가서 출자 의향이 없는지 알아보기로 의견이 일치됐다. Neeleman과 June Morris, 그녀의 남편 Mitch Morris, Rick Frendt는 Southwest의 회장 Herb Kelleher와 사장 겸 CEO인 Colleen Barrett을 같이 만났다. 협상 초기에 Kelleher는 Morris Air를 인수한다는 생각에 별로 관심이 없어 보였으나 두 회사가 근본적 경영철학에서 거의 차이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부터 이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였다. 그 후 Neeleman과 Kelleher는 몇 차례 더 만났고 결국 Kelleher는 Morris Air 지분 인수에 1억 2,900만 달러를 지불하는 데 합의했다. June Morris는 Southwest의 이사회 이사로 임명됐고 Neeleman은 머지 않아 Southwest의 핵심직에 임명될 것이라는 언질을 받았다.


Neeleman은 1994년 1월부터 Southwest Airlines에서 수석부사장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그는 Southwest 내부에서 직책을 약속 받았으며 Herb Kelleher가 은퇴하면 그 업무를 맡고 싶다고 말했다. 그런 야심적인 태도는 Southwest 경영팀 일부 인사들로부터 미움을 받는 계기가 되었다.

Southwest에서 Neeleman은 개혁해야 할 점이 너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Southwest가 지정석 배정제도를 실시해야 하며 전자방식 티켓 발행을 해야 하고, 여행사를 통한 티켓 판매를 중단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의사결정이 즉각 내려지는 소기업 환경에 익숙했기 때문에 제도를 개선하는 데 있어 모든 절차를 밟아야 하는 것에 답답함을 금치 못했다. 그는 때로 회의가 한창 진행되는 도중 불쑥 들어가 어떤 점을 개선해야 한다고 한참 설교하곤 했다.

Neeleman은 Southwest Airlines에서 다섯 달 반을 일한 뒤 그만 뒀다. 쉽게 퇴직을 하기 위해 그는 향후 5년간 미국 국내 항공업종에서 일을 하지 않겠다는 계약에 서명했다. Southwest와의 관계를 정리하고 새로운 일의 도전에 들떠 있었다. 항공사업이 그의 천직이었으나 앞으로 5년 동안 이 업종에 종사하지 못한다는 계약조항 때문에 그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그러나 Neeleman에게 있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솔트레이크시티에 다시 돌아온 Neeleman은 벤처캐피탈 사업에 잠시 몸을 담았으나 결국 손해를 본 뒤 그만 두었다. 그는 Calgary에 본사를 둔 단거리 항공사를 시작하려는 캐나다 사업가들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이 회사 설립을 위해 컨설턴트 역할을 하는 데 동의했으며 결국 WestJet이라는 이름의 이 신설회사 이사회 이사로 임명됐다. Neeleman은 20만 달러를 투자해 회사 주식 80만 주를 사들이기까지 했다.

Neeleman은 과거 Morris Air의 예약시스템 프로그램 개발을 담당했던 David Evans와도 WestJet의 전자 예약시스템 구축을 다시 같이 하게 됐다. 나중에 Open Skies라는 이름으로 개명한 Evans가 운영하던 회사와 WestJet과의 관계를 통해 Neeleman은 동종 업종 근무금지 계약을 위반하지 않고도 항공산업에서 일할 수 있었다.

WestJet은 1996년 2월부터 운항을 개시했고 철저하게 작성된 사업계획서 덕택에 1,800만 달러를 어렵잖게 대출 받을 수 있었다. 이 회사는 얼마 가지 않아 높은 인기를 끌었고 Calgary, Edmonton, Vancouver, Kelowna, Winnipeg, Victoria 등 캐나다 서부를 연결하는 노선을 운항했다. Neeleman은 WestJet에서도 Open Skies의 예약시스템을 도입하도록 설득할 수 있었다. 그럼으로써 그는 자신이 나중에 설립하게 될 항공사에서 사용할 기술과 비즈니스 컨셉을 WestJet에서 베타 테스트 하는 셈이었다.

WestJet과 Open Skies 두 회사 모두 매우 성공적이었다. 1998년 10월, Hewlett-Packard는 Open Skies 지분 매입을 위해 2천만 달러를 지불하고 이 회사를 자회사로 삼았다. WestJet 또한 1999년 6월 IPO(Initial Public Offering : 주식공개상장)를 실시, 사업확장을 위해 충분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다. Neeleman은 WestJet의 IPO 직후 이 회사 주식을 모두 매각하고 동종 업종 근무금지 계약이 만료되자마자 자신의 항공사 설립을 위해 회사를 그만뒀다.

Neeleman은 다시 Michael Lazarus를 찾아가서 새로운 항공사를 차리는 데 그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털어놓았다.

항공사 설립을 위해 가장 먼저 접근한 사람들 중 하나는 항공업에 상당한 경험을 가진 베테랑 David Barger였다. 그는 창업할 회사의 모든 업무를 지휘할 부관 감이었다.

David Barger 못지 않게 Neeleman은 아주 뛰어난 경영팀을 구성해냈다. Southwest Airlines에서 재무담당을 하던 John Owen은 새 회사로 옮기기로 했고 과거 Southwest의 인사부서장을 역임했던 Ann Rhoades도 이직할 것을 약속했다. David Neeleman이 새 항공사를 설립할 것이라는 소문이 퍼지자 수많은 사람들이 부푼 꿈을 안고 이 회사에 몰려 들었다. 그래서 그는 경영팀 인력 충원을 위해서 굳이 채용공고를 낼 필요가 없었다.

Neeleman은 다른 직책을 충원하는 데 독특한 방식을 동원했다. 한때 Virgin Atlantic의 Richard Branson은 새로운 항공사에 지분 투자를 할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는 Neeleman과 Lazarus와 함께 몇 차례 회의를 가졌지만 쌍방은 투자 조건에 합의를 하지 못한 채 결국 협상이 결렬되고 말았다. 그러나 이런 일련의 회합을 통해 Neeleman은 Virgin Atlantic의 명성을 높이는 데 결정적 공헌을 해낸 Gareth Edmonson-Jones와 Amy Curtis-McIntyre를 만나게 됐다. 이 두 사람은 새로운 무명 항공사의 브랜드 지명도를 높이는 일에 매력을 느끼고 Neeleman과 의기투합이 됐다. Virgin Atlantic에 근무하던 운영책임자 Alex Wilcox도 마찬가지였다.

유능한 경영팀을 구성해놓고 Michael Lazarus는 가칭 New Air의 투자자를 물색하는 작업에 돌입했다.

Lazarus는 자신의 벤처캐피탈에서 New Air에 3,500만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약속한 후 Bank of America, Bank of Boston, Massachusetts Mutual, JP Morgan Chase Partners, Soros Quantum Funds 등 다른 벤처캐피탈 업체들과도 접촉했다. 결국 5개 벤처캐피탈 모두 New Air에 투자하기로 했다. 그 후 2년간 Lazarus와 Neeleman은 새로운 회사의 자본으로 1억 3천만 달러를 조달할 수 있었다. Soros Quantum Funds는 24%의 지분을 받는 조건으로 4천만 달러를 투자하여 최대주주가 됐다.


    "우린 항공여행에서 인간성 회복을 지향한다는 컨셉을 내세웠다. 어떤 이유에선지 우리 업계에서는 고객들을 승객이라고 부르게 됐다. 실제로 우리 업계에서 어떤 사람들은 "아 오늘이 화요일이구나. 좌석의 35% 밖에 예약이 안 됐네. 잘됐다. 승무원을 괴롭히는 귀찮은 승객이 오늘은 없겠구나"라는 식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들 귀찮은 승객이 우리 항공기 운행비용을 내는 고객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는 것이다. 우리 항공사는 그런 면에서 다른 경쟁사들보다 좀더 나은 서비스를 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 David Neeleman
Neeleman도 포함하여 회사 내 모든 사람들은 New Air가 보잉 737기종을 구매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경영팀에 속한 모든 사람들이 보잉 737기를 운항하던 회사 출신이었기 때문에 이는 더 이상 생각할 필요도 없는 선택처럼 보였다. 그러나 Neeleman과 John Owen(New Air의 재무담당 책임자)은 보잉社의 영업 담당자와 만나는 자리에서 가격이 너무 비싸다고 생각했다. Neeleman은 보잉社에 약간의 압력을 넣기 위해 이 회사의 경쟁사인 에어버스社와 접촉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에어버스 항공기가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에어버스 320기종을 채택할 경우 구입 및 유지에 드는 모든 비용과 에어버스社에서 제공하는 융자 조건까지 따져봤을 때 보잉 737보다도 훨씬 더 경제적이라 판단했다. 결국 Neeleman은 에어버스를 구입하기로 결정했다. New Air는 25대의 제트기를 주문했고 장래에 A320기종 50대를 더 구입한다는 옵션 계약까지 맺었다. 이는 미래 주문건까지 합치면 총 36억 달러에 달하는 것이었다.

Neeleman은 또 New Air의 본사를 라과디아나 뉴왁 공항이 아닌 케네디 공항으로 정하여 업계의 일반적인 상식을 또 한번 뒤엎었다.

물론 그 다음 중요한 사항들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결정이 내려져야 했다. New Air는 TWA에서 사용하던 케네디 공항의 낡은 터미널을 얻을 수 있었지만 그 전에 연방정부 규제기관으로부터 항공기 출도착 허가를 먼저 얻어야 했다. 1999년 2월 5일 New Air Corporation은 교통부에 75개 출도착 슬롯 사용권 허가서를 제출했다. 그 후 4월 30일, 항공사 인증서를 얻기 위해 신청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이들 신청서가 최종 승인을 받기 전에 항공사의 공식 명칭을 정해야만 했다. 회사 내 대부분 사람들은 True Blue라는 이름이 좋다는 견해였다. 그러나 이 이름은 벌써 다른 회사가 사용 중인 등록상표였다. 그래서 새로운 항공사 이름은 'JetBlue'로 결정되었던 것이다.

JetBlue가 직원 채용을 하려던 하던 당시 미국은 닷컴 열풍이 한창이라 채용 원칙을 과거 항공업계 경력이 있는 사람을 우선적으로 선발한다는 것에서 고객 서비스에 자질이 있는 사람들을 채용한다는 것으로 바꿨다. 그래서 직원 채용을 위해 항공업계 전문지에 구인광고를 내지 않고 Village Voice 같은 뉴욕市 지역신문에 광고를 내는 방법을 택했다.

이런 방식을 통해 Neeleman은 유능한 직원들을 채용할 수 있었으며 이외에도 막 시중에 유통되기 시작한 신기술을 영업에 활용하길 원했다. 그 중 하나가 LiveTV로서 이 엔터테인먼트 기술을 통해 JetBlue 승객들은 비행 중 24개 채널을 가진 TV를 시청할 수 있게 됐다. 이는 TV를 좋아하는 고객들에게 상당한 경쟁우위로 작용했다. 일부 사람들은 이 기술이 얼마 되지 않은 것이라 실패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지만 그럼에도 JetBlue는 전기종에 LiveTV를 설치했다. JetBlue는 이 기술에 매료가 된 나머지 결국 2002년 9월, 이 회사를 8,200만 달러에 인수하기에 이르렀다.


JetBlue는 구입한 항공기 주문이 도착할 때까지 에어버스 A320기종을 임대하여 운항하고 있었다. 뉴욕-플로리다 노선 운항을 시작한지 1년만에 플로리다, 캘리포니아, 뉴욕, 버몬트, 유타 등 10개 지역으로 항로를 넓혀나갔다.

경쟁사들보다 뭐든지 뛰어나야 한다는 회사 경영철학에 근거하여 JetBlue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독특한 경영방침을 실천했다.

  • 승무원들이 직무를 공유하는 것을 장려했다. 즉 업무 일정을 짜는 데 있어 어떤 항공편에 누가 일하러 나오든지 자리가 채워지기만 하면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이런 제도는 승무원들 사이에서 매우 호평을 받았다. 회사는 또 채용 가능 인력풀 확대를 위해 파트타임 근무자나 휴학생들도 환영했다. JetBlue는 직원 훈련을 위해 사내 대학까지 설립했다.

  • JetBlue는 세전(稅前) 수익의 50%를 이익공유 프로그램을 통해 직원들에게 돌려줬다. 이는 직원들의 401K(미국 직장인 연금) 플랜을 통해 납입 됐고 그 납입금과 같은 금액을 회사에서 401K플랜에 입금시켰다.

  • Neeleman은 최소한 일주일에 한 번씩 JetBlue 항공편에 탑승하여 승무원이나 화물처리 전담직원들과 대화를 하는 자리를 가졌다. 그는 또 승객들에게 간식을 나눠주며 JetBlue를 탑승한 느낌이 어떠냐고 직접 물어보기도 했다.

    운항을 개시한지 6개월만에 JetBlue는 벌써 흑자를 거두게 됐다. JetBlue는 업계 평균보다 훨씬 높은 탑승률 71.6%를 기록하고 있었다. 2000년 8월에 JetBlue는 하루 48 항공편을 운항하고 있었고 어떤 평가기준으로 봐도 이 회사는 우수한 실적을 거두고 있었다. 운항을 개시한 첫 해 100만 명이 넘는 승객들이 JetBlue를 이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JetBlue의 저비용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회사는 정보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했으며 전면적으로 전자방식 티켓팅을 도입한 최초의 항공사였다. 또 조종석에서 모든 계기판과 조종 매뉴얼 등을 전자방식으로 전환한 것도 JetBlue가 처음이었다. 중고 항공기를 임대하는 대신 신기종을 매입하는 방식을 채택함으로써 JetBlue는 신기술을 도입하는데 훨씬 더 수월했다. 그것은 고정된 시스템이 전혀 없는 까닭에 가능했던 것이다.

    JetBlue는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또 다른 일들도 했다. 즉 별도의 청소전담팀을 두지 않고 대신 꽉 짜여진 항공 일정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내어 승무원들이 이를 해냈던 것이다. 승무원들이나 화물처리 전담팀은 모두 Blackberry PDA를 소지하고 다니면서 운항 중에 생기는 작은 문제라도 즉시 보고를 했다. 또 Pocket PC를 활용하여 운항 중에 고객만족도 조사를 실시하기도 했다.

    그런 효율성 추구와 함께 JetBlue는 홍보 측면에서도 독특한 방식을 채택했다. JetBlue는 브랜드 인지도 증대를 위해 값비싼 광고에 의존하지 않고 대신 일종의 게릴라 PR 방식을 사용했다. 예를 들어 운동경기장에 플래카드를 설치하는 데 8만 달러를 들이는 대신 공항에 매일 오가는 택시 운전기사들에게 주는 전단지를 제작하는 데 사용했다. 회사는 또 뉴욕市에 대형 현수막을 내걸고 "항공티켓을 사면 TV 시청은 공짜" "저 하늘 위에 누군가가 당신을 내려다보고 있다"는 식의 재미있는 구호를 선보였다. 골리앗에 비유되는 대형 항공사에 대항하는 다윗과 같은 존재로 인지되기 시작한 JetBlue는 항공여행에 인간성 회복을 가져오는 회사로도 알려지게 됐다. JetBlue는 회사의 독특한 경영철학 덕택에 설립 초기 신문 잡지 기사에 자주 오르내리기도 했다.


2001년 여름, JetBlue는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회사에서는 거의 5주마다 에어버스 항공기 한 대씩을 증편하고 있었다. JetBlue는 같은 해 6월 향후 10년 내 에어버스 320기 48대를 더 구입한다는 계약을 맺기도 했다. 이를 모두 더하면 회사의 항공기 보유대수는 131대에 달하는 것이었다.

사업이 번창하여 JetBlue는 IPO를 서두르게 됐고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등록신청서를 제출하게 됐다. IPO 일자로 잡은 날짜는 2001년 9월 11일이었다. 이 날은 완전히 일정이 뒤틀어진 날이었다. 세계무역센터에 대한 테러공격과 그 직후 FAA에서 미국 내 모든 항공기 운항을 중단시키라는 명령이 떨어지게 되어 IPO뿐만 아니라 모든 일정이 다 무기 연기되었던 것이다.

9ㆍ11사태가 있은 후 미국의 항공산업은 극심한 침체상태에 빠졌다. 다수의 항공사들은 단순히 생존에 급급했다. JetBlue는 초기에 충분한 자본금을 갖고 출발한 덕택에 비교적 피해를 덜 입고 흑자를 유지할 수 있었다. 2002년 봄, 다시 상장을 할 계획을 세웠다. JetBlue는 9ㆍ11 이후 최초의 항공업계 IPO인 셈이었으며 이를 통해 회사 지분 16%를 1억4,730만 달러에 매각할 수 있었다. JetBlue는 나스닥 시장에 2002년 4월 12일 상장이 됐다. 그로부터 한 달 후 JetBlue의 주가는 두 배로 뛰었다. 한때 JetBlue의 시가는 American, United, Delta Airlines 세 회사를 다 합친 것보다도 더 높게 뛴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모든 것이 순조로운 것은 아니었다. 2003년 9월, JetBlue (American, United, Northwest)가 테러위협 요인으로 간주될 수 있는 위험인물을 찾아내기 위해 FBI에 승객 개인정보를 유출시켰다는 뉴스가 터져 나왔다. 물론 그 의도는 이해할 수 있었지만 그런 행위 자체는 JetBlue의 경영철학에 위배되는 것이었다. 이런 사실을 미처 몰랐던 Neeleman은 곧 사과를 하고 회사의 실수를 인정했다.

David Neeleman은 JetBlue의 기업문화를 발전시키고 유지하는 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과업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회사의 다섯 가지 중요한 가치인 안전, 애정, 성실성, 흥미, 열정을 북돋기 위해 직원들에게 귀감을 보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사회적 공헌 측면에서도 Neeleman은 남다른 면이 있다. JetBlue에서 그는 스톡옵션을 원하지 않았고 대신 12% 지분 보유만으로도 얼마든지 가족이 먹고살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대신 다른 항공사 CEO들에 비해 훨씬 낮은 수준인 20만 달러 연봉을 받길 원했다. 그럼에도 Neeleman과 David Barger 사장은 항공사고 등 비상시 회사 직원들에게 지급되는 재난기금에 자신들의 20만 달러 급여를 전액 기부했다.

그러는 한편 JetBlue는 꾸준히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설립 후 3년째 되는 2003년 영업매출로 9억 9,840만 달러를 올려 10억 달러에 조금 못 미치는 실적을 올렸다. JetBlue는 현재 항공기 55대를 운영하면서 매일 220개 노선을 운항하고 있다. 또한 매년 2천 명이 넘는 신규 직원을 채용하고 있다. 회사에서는 내년에 신형 기종 14대 구매와 노선 확충도 계획 중이라 한다. JetBlue의 성공 사례는 대형 항공사들도 예의 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Delta에서는 사내 벤처회사로서 Song이라는 저가 항공사를 신설하기도 했다. 또 United는 Ted라는 이름의 저가 항공사를 곧 설립할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JetBlue는 얼마 전 100석짜리 Embraer 190 중형기를 구매한다는 계획을 발표, 또 한번 업계를 놀라게 했다. 2003년 6월 Neeleman은 100대의 Embraer 중형기 구매주문을 했으며 추가로 100대를 더 구매한다는 옵션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이들 신형기는 에어버스 기종보다 소형으로서 소도시 초단거리 노선에 투입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 항공기는 2005년부터 취항할 예정이며 이런 전략이 성공할지 여부는 아직 불투명한 상태다. JetBlue는 Embraer 제조공장의 생산능력을 향후 5년 또는 그보다 더 오랜 기간 독점하게 됐으므로 경쟁에서 상당한 우위를 차지할 수 있을 전망이다. 따라서 이런 중형 기종 시장에서 경쟁사들보다 훨씬 유리한 위치에 있게 된 것이다.


그러면 Neeleman이 JetBlue와 그 전에는 Morris Air, Open Skies, WestJet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한 마디로 말하면 그의 성공 배후에는 다음 14가지 성공의 원칙이 숨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1. 내가 가장 열정을 느끼는 일에 집중하라
- 그런 일만이 내가 싫증을 내지 않고 끈기 있게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2. 언제나 남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생각하라
- 일반적인 상식을 거부하고 문제를 새로운 각도에서 보도록 하라. 뭔가 독창적인 일을 할 때는 자신감을 갖고 하라.

3. 최고 전문가와 같이 일을 하라
- 다시 말하면 그로부터 보고 배우라는 얘기다. Neeleman은 Morris Air에 있을 때 Southwest로부터 많은 것을 모방한 까닭에 Southwest가 이 회사를 인수하기에 이르렀다. JetBlue를 운영할 때 그는 자신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사람들을 적극 채용했다.

4. 현상유지에 급급하지 말고 언제나 새로운 것을 시도하라
- 일시적인 후퇴를 인생의 끝으로 생각하지 말고 단지 한 章의 끝일뿐 새로운 章에서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 믿도록 한다. 언제든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으면 유종의 미를 거두고 다시 새로운 것을 시작하도록 하라.

5. 남들보다 언제나 좋은 것을 제공한다
- 경쟁사들보다 한 걸음 앞서 나간다는 것이다. 최고의 제품을 저렴한 가격에 팔면 어떤 업종에서든 성공하지 않을 수 없다. 경쟁사가 아무리 강력하다 해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저 자신이 해야 할 일만 꾸준히 하고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필요한 조건을 충족시키는 데 최선을 다하면 된다.

6. 언제나 충분한 자본금을 갖고 사업을 한다
- 언제든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을 때 자본이 충분한 기업만이 살아 남는다. 재무적으로 탄탄하지 않으면 경쟁사들이 이것을 약점으로 삼을 것이다. 절대로 그런 상황에 처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7. 회사의 직원들을 진심으로 아껴라
- 어떤 기업의 성패는 궁극적으로 그 회사의 현장 직원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회사가 자신들을 아끼지 않는다고 직원들이 느끼게 되면 고객 관리를 하는 데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회사는 항상 직원들을 존중하고 배려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해줘야 한다. 또 직원들의 경제적 안정을 위해서도 구체적으로 회사가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알려줘야 한다. 만족스러운 직장 분위기를 조성할 때 직원들도 적극 호응하게 될 것이다.

8. 고객을 존중해야 한다
-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고객이 회사와 접촉을 하는 모든 순간마다 회사에 대한 좋은 인상이 쌓이게 된다. 만약 모든 고객들 가운데 절반 이상이 입소문을 통해서 왔다고 한다면 회사가 고객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하고 있다는 증거다.

9. 실수를 저지르면 곧 이를 시인하라
- 항상 완벽을 기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언제나 실수가 생기기 마련이다. 실수에 대해 쉽사리 인정을 하면 할수록 더 좋다. 문제를 정면에서 해결하고자 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한 다음 고객 만족을 위한 일로 되돌아간다. 사람들은 회사의 그런 진심 어린 태도에 감동하고 좋은 평가를 할 것이다.

10. 세세한 사항에 관심을 기울여라
- 세세한 사항을 어떻게 처리하는가에 따라 고객 만족도를 뒤바꾸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고객과 접촉할 때마다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세심하게 관찰하도록 한다. 그것은 회사에 있어 가장 중요한 기회이며 따라서 고객과 접촉할 때마다 세심하게 배려해야 한다. 그런 세세한 사항을 잘 처리하지 못한다면 팀 내에 이를 잘 처리하는 사람에게 일을 맡기는 것이 좋다.

11. 비용절감을 할 때 주의를 기울여라
- 그것이 외부에 드러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합당한 선에서 운영비용을 절양하는 습관을 가지도록 한다.

12. 기술을 최대한으로 활용한다
- 가능한 한 모든 것을 자동화한다. JetBlue는 재택근무 예약전담 직원들을 활용했던 까닭에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콜센터를 세울 필요가 없었다. JetBlue의 파일럿들은 노트북 컴퓨터를 활용하여 연료가 얼마만큼 남고 최소거리 항로가 어디인지 판단했다. 또한 JetBlue에서 발행하는 모든 티켓은 전자방식으로 처리됐고 경영에 필요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입수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모든 것들은 정보기술을 현명하게 활용한 까닭에 가능했던 것이다.

13. 세간의 관심을 끄는 행동을 하라
- 유료 광고보다는 그런 행동이 훨씬 더 효과적이고 비용도 적게 든다. 게릴라 마케팅 기법을 사용하여 회사에 대한 좋은 소문을 내는 것도 중요하다. CEO가 공공연설을 자주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경쟁사들이 상상도 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회사 인지도를 높이고 흥미로운 측면을 부각시켜 PR 활동의 효과를 높이도록 한다.

14. 회사의 핵심적 가치를 계속 유지 발전시킨다
- 회사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일정한 핵심 가치를 정해놓고 이를 회사 업무 처리에서 언제나 우선적으로 중시한다. 적절한 핵심 가치를 채택할 경우 고객 만족도를 높일 뿐만 아니라 직원들의 사기 앙양과 회사의 사업도 번창하게 될 수 있다.


저자소개

James Wynbrandt
    항공산업 관련 기자 겸 저술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가 기고하는 항공업 관련 기사는 New York Times, Forbes, Management Review, Plane&Pilot, General Aviation News, Avionics News, Pilot Journal, Flying, Aspen Magazine, Computer and Electronics 등에 게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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