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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말하는 또다른 방식「루시퍼 원리」


안윤호 (아마추어 커널 해커) 2004/03/24
사람들이 제일 갈망하는 것은 권력과 통제력일지도 모른다. 부와 명예를 추구하는 것은 사마천의 사기열전(史記列傳)에도 나오듯이 인간 본성일지도 모른다. 사마천은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부와 권력을 추구하는 것을 인간의 자연적인 본성으로 보았다. 사기열전은 중국의 춘추전국시대를 살면서 무엇인가 걸출한 일을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적고 있다.

그 책에 나온 착한 사람은 백이와 숙제에 대한 이야기 외에는 없다. 백이와 숙제는 주나라 무왕의 출정을 저지하려 했으나 저지당하고 산 속에서 세상을 한탄하며 고사리와 나물만 먹다가 죽어간 사람들이다. 사마천에 의하면 이들은 그래도 다행한 케이스라는 것이다. 그나마 공자가 이들을 성인으로 추앙해 주었기 때문에 잊혀지지 않고 사람들이 그들을 기리게 됐다는 것이다.

이처럼 사마천은 과연 의인이 인정받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1800여 년 전에 고민했다. 그 다음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정말 찬란한 문체로 춘추전국시대를 이끌어 간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동양의 고전이 되어 버린 사마천의 사기열전은 한 명의 사관(史官)으로서 사마천이 듣고 수집한 기전체(biography)의 글이다. 열전은 영어로 biographies로 번역된다. 역사가 사람들의 활동으로 움직이고 그 사람들의 일화를 기록한 전기의 모음인 열전(기전체) 방식을 확립한 것은 사마천의 놀라운 발명이었다(필자가 열전이라고 부르는 단어는 여기에서 빌려온 것이다).

한줌의 권력과 명예를 위해
쓰여진 지 2000년이 다 되어가는 사마천의 사기열전은 등장인물이 눈앞에 살아 있는 것 같은 생생한 필체로 보는 사람들을 글 속으로 끌어들인다. 어쩌면 글을 보는 사람들은 그 당시와 지금이나 별로 변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주로 전쟁을 다룬 그의 글 속에 흐르는 피 냄새가 사람들을 잡아당기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마천이 제일 부러워했던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돈이 많은 화식(貨殖)들이었다. 요즘으로 치면 부자들의 이야기 정도가 적당한 번역이 될 것이다.

한줌의 권력을 위해서 또는 명예를 위해 모사들이 움직일 때마다 번번이 전쟁이 났고 군사들과 백성들은 피를 흘려야 했다. 어쩌면 상황 타개를 위해 최선이라 할 수 있는 방법론을 들고 모사들은 제후와 제후 사이를 오갔다. 책에 나온 바대로 세치 혀를 놀려 주군의 관심을 끌어 자신의 계책대로 만든 군사 외교적 작전이 성공하면 높은 벼슬과 봉록이 주어지고, 실패할 경우에는 다시 방랑의 길을 걷거나 주살당하는 운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떠돌며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것을 유세라고 불렀고 한비자는 유세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그의 유세편에 적었다.

이 글은 명문인지라 사기열전에도 수록되어 있다. 자신들의 목숨을 걸면서까지 각 나라를 돌아다니는 유세객들이 워낙 많고 수많은 이론들이 검증을 기다렸기 때문에 당시에는 수많은 사상들이 명멸했고 TV에 가끔 나오는 도올 선생은 이 시기의 지적 가능성과 다양성에 깃들인 약동성을 지적한 바도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공자나 맹자도 이 시기에는 복고적 이상주의자의 평을 들으며 천하를 주유했다. 일종의 비교해부학자와 다름없는 사마천은 공자를 열전보다 높은 세가편에 올려놓긴 했으나 사실 그렇게 높이 평가하지는 않았다(사마천이 글을 쓸 당시의 한(漢)나라는 유가(儒家)의 이념을 국가의 통치이념으로 삼기는 했으나 실제로는 진나라처럼 법가(法家)의 이념으로 통치했고 사람들을 충과 효라는 유가의 이념으로 묶어 두기를 원했다. 통치이념으로 알맞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튼 사람들을 어떤 강력하고 새로운 사상으로 이어 놓는 것도 중요한 정치적 수단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사상이나 개념이 어떤 힘을 갖는가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후 동양을 지배한 중요한 사상들이 이러한 혼란기에 발생하였다.

제후의 말 한마디면 수십만의 군사가 움직이고 군사들의 훈련과 보급 그리고 이에 동원되어야 하는 백성들은 통제된 상황에서 명령에 따라 움직여야 했다. 때로는 말도 안 되는 전쟁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제후들의 명령은 절대적이었으며 그 뒤에는 이들을 조종하는 세객들이 있었다(이들이 바로 사기열전의 주인공이다). 다들 평화로이 살게 되는 것은 나중에 더 큰 무력으로 진나라가 다른 제후 국가들을 눌러버린 다음이었다. 그 과정까지 수많은 걸출한 인물들이 나오고 때로는 주살되곤 했다.

세객의 작전은 어떠한 상황에 대한 완전한 통제력을 얻는 것으로 포위된 도시를 구하기 위해 외교적인 노력으로 다른 나라를 움직여 공격한 국가의 국경선을 압박하거나 다른 요지를 직접 기습하거나 하는 식이었다. 특별한 명분이 있다기보다는 살아남기 위해서, 또는 땅과 백성을 얻기 위해서, 결국은 통제력과 권력과 부를 위해서 하나의 거대한 초 유기체인 제후국은 다른 제후국과 싸움을 벌이곤 했다. 정말 신기한 것은 이런 혼란과 폭력이 난무하는 와중에 중요한 사상들이 나와 사람들을 지배했다는 것이다.

초 유기체 또는 루시퍼 원리
필자가 재미있게 몇 번이나 읽었던 책 중에 『루시퍼 원리』라는 책이 있다. 하워드 블룸이라는 사람이 쓴 책으로 ‘역사 원동력에 대한 탐구’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우리나라에서는 파스칼 북스에서 번역됐다). 필자 개인적으로 워낙 책을 좋아하긴 했지만 이 책만큼 특이한 책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워드 블룸은 사람들이 역사를 만드는 방법을 연구했다.

저자는 책의 서두에서 간단히 루시퍼 원리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루시퍼 원리라는 것은 자연이 사용하는 폭력과 증오, 그리고 탐욕이 결국은 하나의 도구이며 자연의 커다란 풍요와 창조의 일면이라는 것이다. 조각칼의 뾰족날처럼 사물을 자르고 파괴하지만 결국은 그러한 폭력이 하나의 창조원리의 일종이라는 것이다.

처음에 이처럼 어려운 주제를 던지면서 이 책은 시작된다. 인간 본연의 악과 폭력을 밑그림으로 해서 전체적 그림을 그려보려는 도전인 것이다(괴테의 파우스트에서 메피스토펠레스는 파우스트에게 자기는 악을 행하지만 결국 선한 일을 행하는 존재라고 했던 유명한 문구도 있다). 폭력은 개인적인 것에서 출발하여 점차 집단적인 폭력과 광기로 나타나고 저자는 이러한 예를 싸잡아 ‘광기는 개인에서는 예외지만 집단에서는 법칙’이라는 말로 니체를 인용하였다. 아마 이 책이 주류가 되기는 어려울 것이고 싫어하는 사람도 많겠지만 재미있는 것만은 틀림없다(저자의 다른 책으로는 『집단정신의 진화(Global Brain)』라는 책이 있다).

하나의 개인은 사회라는 집단 속에서가 아니면 살 수가 없다. 아무리 고독한 철학자나 투사라도 누군가 그의 의견을 듣거나 읽지 않으면 정말 곤란할 것이다. 그들이 속한 사회의 체제를 비난할 경우에조차 사회는 필요하다. 사람들은 세포가 조직 속에서 생명을 얻어내듯이 사회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사회는 조직이 세포가 모여 일종의 기능군집을 이끌 듯이 사람들을 묶는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연적으로 생기는 질서와 상호작용이 있고 그 안에서 서열과 조직활동이 생겨나며, 개인들의 역할분담이 저절로 생겨난다. 신경망처럼 사람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때로 이 모든 것들이 합쳐 예상하지 못했던 반응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저자가 엔텔레키(entelechy -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며 자기조직화하면 예상치 못했던 특성이 나타나는 것. 복잡성 과학에서는 이머징 현상이라고도 부른다)라고 부르는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조용한 물방울이 바다가 되면 거대한 파도와 해일이 되듯이 사람들이 모이면 문화가 되고 다수라는 표면 위에서 개인은 밀려다닌다. 구성원인 개인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집단의 성격이 드러나고 개인은 무력감을 느끼면서 또 집단에 밀려다닌다. 오늘날 우리가 속해 있는 사회의 광기를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비판하면서도 밀려다니며 사회를 유지시키는 것처럼.

이 책의 저자가 루시퍼 원리라고 부르는 것들은 다른 곳에서 차용한 것들이다. 복잡성 과학과 사회생물학에서 일부분씩을 뽑아 만든 것들이다(이러한 구성원리로 400페이지가 넘는 책을 질리지 않게 채워 나가는 것은 보통 실력이 아니다. 책의 진행은 풍부한 실례를 분석한 것이다). 책에 의하면 루시퍼 원리는 기본적으로 5개의 구성 요소로 되어 있다. 자연적인 것이든 사회적인 것이든 저자는 특별한 구분을 하지 않는다. 다음과 같이 뻔해 보이는 5개의 원리를 갖고 저자는 이야기를 꾸려나간다.

① 자기 조직 체계 또는 복제자의 원리
공장에서 물건이 나오듯 원료를 조립해 복잡한 생산물을 만드는 구조. 자연적인 조립 설계도인 유전자로부터 공장에서 물건이 나오듯 원료를 가공한다. 자연계의 먹이사슬을 생각하면 될 것이다. 최종 산물인 생명체는 놀라울 정도로 싸게 만들어지며 엄청나게 소모적이다.
② 초 유기체
소모적인 생산품은 결국 자연적으로 구성된 거대한 유기체의 일부이다. 세포로 말하면 신체의 일부이고 사회적으로는 사람들은 거대한 조직의 일부이다.
③ 밈
사상이나 관념의 복제 단위이다. 유전자(gene)가 유전정보의 단위로 복제되듯이 사람들의 생각이나 문화가 복제되는 단위가 밈이다
④ 신경그물
사회가 형성되면 사람들은 거대한 네트워크 구조의 그물의 한 눈처럼 작용하며 조직은 인간을 거대한 학습장치의 구성요소로 만들어 버린다.
⑤ 사회서열
서열이 매겨지면 우세한 집단은 다른 집단을 억누르며 사회적 계급이 형성된다.

책의 제2장은 ‘천국의 핏자국’이라는 제목으로 시작된다. 살육과 파괴는 자연의 기본적인 시그널(신호)이라는 것이다. 2장의 시작부인 ‘피의 어머니 자연’에는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에서 한 대목을 인용했다. “평화로이 노래하는 새들은 대부분 곤충과 씨앗을 먹고 살면서 끊임없이 생명을 파괴하고 있다. 그러한 사실을 우리는 보지 않거나 혹은 잊고 있다.” 많은 저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문명이 발달하고 영악해지면서 전쟁과 투쟁이 시작된다는 가설을 책의 저자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한다. 그것은 문화가 아니라 본능이며 최강의 시그널이라는 것이다.

몇 개의 예가 있지만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인 사자가 영양과 공존하는 법은 영양을 잡아먹는 것 이외의 방법은 없다. 먹이사슬이라는 자연의 법칙이 태어나는 영양의 수와 사자의 개체수를 조절할 뿐이다. 평상시 게으르고 평화적인 침팬지 집단이 갑자기 집단 살해를 일으키는 전사 집단으로 변하는 현상이라든가 부족시대의 자손을 위한 집단 전쟁의 예를 들면서 자연이 스스로를 다듬는 조각칼처럼 자신을 깍아 다듬는 하나의 원리로 보았다. 따라서 일종의 살육과 파괴를 저자는 질서를 부여하는 조각칼로 보았다.

끝에는 『이기적인 유전자』의 도킨스의 예를 들었다. 자연은 생산품을 던져두고 아웅다웅하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자연이 진화한 결과 개체는 놀랄 만큼 싼 가격으로 만들어 낼 수 있다(사람도 예외는 아니라는 것이다)는 것이며, 이 와중에서 똑똑한 놈은 살아남고 죽은 놈들은 자연의 순환고리 안으로 돌아간다. 수백만의 실패로부터 내일의 해결책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결국 자기조직의 최종적인 힘과 시그널이 무엇인지는 자명해진다.

두 번째 원리인 초 유기체라는 것은 저자가 다른 신 다윈주의자들의 개체선택이라는 것을 부정하면서 시작한다. 모든 것은 집단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박테리아나 해면동물마저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을 예로 들면서 하나의 유기체처럼 움직이는 개체들의 집단을 초 유기체라고 불렀다.

세포나 개체는 이 초 유기체로부터 생명을 보장받는다. 물론 집단이 죽어버리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간단한 생물인 해면의 집단으로부터 고립은 곧 개체의 죽음이라는 이야기에서 시작하여 사람들의 집단에 이르면 자살과 관상동맥증이 사회로부터의 고립에서 비롯된다는 예를 들었다. 조직에서 세포를 떼어내면 세포의 자기파괴가 일어나듯이 사람도 다른 사람들과의 유대가 끊어지거나 자신감을 상실하면 급격히 정신과 건강이 약해지며, 반대로 자신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면 어려운 일도 쉽게 돌파하는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는 예들을 들었다.

조직 내의 중요한 개체는 하나의 센터이다. 놀라운 자신감이나 자기신뢰마저도 집단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가끔 지도자나 중요한 개체들은 놀라울 만큼 강한 불굴의 모습을 보이지만 이들의 힘은 집단 전체로부터 모아진 것이며, 때로는 쉽게 무너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부분적으로는 개인이 집단에, 부분적으로는 집단이 개인에 영향을 주면서 초 유기체는 자신의 생명을 영위한다는 것이다. 집단에서 한 사람은 거대한 생명의 일부이다.

세 번째 원리인 ‘밈(meme)’은 유전자가 아니라 초 유기체 속으로 퍼지는 사고나 경험의 단위이다. 유전자처럼 증식하며 개선되고 또 집단 안으로 퍼져 나간다. 이 말을 처음으로 만든 사람은 리차드 도킨스이고 『이기적인 유전자』에서 처음 등장한다. 하나의 기술이나 사상이 사람들에게 퍼져나가는 것을 보면 이 가상적인 정신적 유전단위인 ‘밈’이라는 것이 정말 있을 법도 하다. 하나의 문화로 존재하기도 하지만 조직의 정치적인 측면에서 사람들은 이 밈을 조작하여 사람들을 예상외의 국면으로 몰아가기도 했다. 하나의 적을 만들어 내거나 가상적인 악마를 만들어 사람들을 조작하는 경우는 역사에 많이 등장했다. 적개심이 하나의 커다란 정신적 지주가 되는 경우를 저자는 몇 개의 예를 들어 설명했다.

하나의 초 유기체를 적개심으로 무장시켜 분노와 좌절과 질투를 적개심으로 향하게 하여 상황을 타개하는 것이다. 이런 일은 드물다고 생각하겠으나 정치사에서는 기본적인 것이다. 아무튼 한번 생긴 밈은 한번 생긴 유전자(gene)처럼 잘 없어지지 않는다. 하나의 사상적인 단위인 밈은 몇 명의 소수의 사람들의 머리 속에서 맴돌다가 어느 날 갑자기 발현한다.

저자가 예로 든 것은 마르크스가 만들고 사람들의 머리 속에서 잊혀지다가 어느 날 책을 뒤지던 레닌 같은 사람들의 머리 속으로 밈이 옮겨졌고 결국 극한 상황에 처했던 러시아의 혁명으로 이어진 것을 예로 들었다. 분노와 좌절은 밈이 퍼지기 좋은 조건이다. 필자는 갑자기 사기열전의 뛰어난 유세객들의 말솜씨가 생각난다. 극한 상황에 처한 나라에 나타나 새로운 가설과 놀라운 책략을 이야기하고 제후와 국민을 격분시켜 위기를 타개해 나가곤 했다. 어쩌면 오늘날도 이런 사람들이 활동하기 좋을 때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들의 밈이 사기열전에 남아 있다.

네 번째는 신경그물로 초 유기체의 집단적 학습 장치이다. 개체는 거대한 초 유기체의 뉴런(신경세포)처럼 작용한다. 지능이 매우 낮은 꿀벌이 꿀을 찾아내는 방법은 집단적 지능의 산물이다. 간단한 로직 회로처럼 꿀벌은 자신의 역할을 수행한다. 먹이를 찾은 꿀벌에게는 높은 인기도가 주어지고 먹이를 찾지 못한 벌에게는 낮은 점수를 부여함으로써 꿀벌의 집단 지능은 뉴런 네트워크처럼 움직인다. 사람들의 사회도 하루에도 수백 번씩 만나는 구성원의 집단 네트워크이다. 사회의 거대한 사회경제적인 움직임과 같은 것은 수백만의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결정의 표현이다. 그 속에서 개인은 무력하다. 때로는 혁명과 공황이 사회를 뒤흔들기도 하지만 곧 다시 안정상태를 찾아낸다.

저자의 주장 중 흥미로운 것은 남성의 소모성이라는 부분이다. 공격성과 무모함이 자연적 신경 네트워크의 시험적인 소모 장치라는 부분이다. 소모가 심하고 빨리 없어지는 자연적인 장치이며 네트워크의 중간에서 시험적인 연결을 시도하는 부품이라는 것이다. 물론 요즘은 거의 없어져가는 성향이긴 하지만. 초 유기체의 팽창욕구는 그 신경네트워크에 개체들을 흩뿌려 놓고 주사위 놀이를 즐긴다는 것이다.

다섯 번째는 페킹 오더(pecking order)라는 것인데 처음에는 노르웨이의 동물학자가 1차대전이 지난지 얼마 후 발견한 것이다. 농장에서 평화로이 모이를 먹는 암탉을 관찰하던 학자는 모이통에서 모이를 먹는 장소와 서열이 일정하게 유지된다는 것을 알았다. 당당하게 생긴 놈이 먼저 모이를 먹고 그 다음에는 다른 닭이 모이를 먹는데 이 서열은 고정적이었다. 암탉의 내부에서 미묘한 사회 서열이 있었다는 것이다. 얼마 후 실험적으로 다른 암탉을 등장시키자 조용하던 닭의 세계가 싸움장으로 변하는 것이었다. 새로 들어온 닭은 유리한 자리를 잡으려 하고 다른 닭들은 그걸 용납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얼마 후 조정이 이루어지고 닭들의 세계는 평화롭게 됐다.

서열은 다른 동물이나 인간 사회에도 존재한다는 사실이 그 다음의 연구에서 밝혀졌다고 한다. 서열이 바뀌면 동물들은 신체구조까지도 바뀐다는 것도 밝혀졌다. 우두머리가 된 동물은 당당해지고 어깨가 올라간다고 한다. 원숭이의 경우에는 테스토스테론의 레벨과 정자의 수도 늘어난다는 것이 밝혀졌다. 국가간에도 페킹 오더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의 사회에도 물론 페킹 오더가 있다.

대충 이러한 원리로 사회가 변하는 것을 설명한 책인데 관심이 있는 독자들은 한번 읽어 보기 바란다. 어쩌면 그동안 눈에 띄지 않던 사회 현상들이 더 예리하게 관찰될지도 모른다. 필자는 루시퍼 원리에서 설명한 내용들을 100퍼센트 믿지는 않으나 저자는 독자들이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도록 많은 예들을 보여준다. 많은 내용들은 유전자 알고리즘을 만든 존 홀랜드의 복잡적응계(이를테면 그의 저서 『숨겨진 질서』에 나온다. 이 책은 스타니슬라브 울람 추모강연회를 정리한 것이다)에 나오는 내용과 부분적으로 유사하기도 하다.

글을 읽고 책을 덮으면 최악의 시나리오를 갖는 소설이 한편 눈앞에 쏟아져 나올 것 같은 『루시퍼의 원리』에는 실감나는 예증으로 정치사회학적인 예들이 많다. 마오쩌뚱이 홍위병을 선동한 것이라든가 선동가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적과 악마를 만들어 내거나 하는 것들은 우리들 주위에서도 많이 볼 수 있던 현상들이다. 사회학적인 서열이 결국은 동물의 페킹 오더의 다른 예와 비슷하게 느껴진다든가 하는 것 같은 생각에 잠기게도 한다.

필자가 굳이 이 책을 전산에 관련된 사람들에게 끄집어내어 설명하는 것은 요즘같이 어수선한 시기에 사회학적인 측면에도 잠깐 관심을 돌려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는 필자의 생각 때문이다. 적어도 책을 한번 들여다보면 생각할 거리를 만들어 내는 데는 충분할 것 같다. 꼭 고정된 직업적 사고틀만이 좋은 것은 아닐 수도 있다. 베르베르의 『개미』를 본 사람들은 어떤 면에서는 이 책에서 많이 인용하는 에드워드 읠슨의 『사회생물학』이나 『개미의 사회』의 소설판을 본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미로에 갇힌 쥐 그리고 통제력
어떻게 보면 이 책에서 강조한 것은 사회 서열과 통제력인데 아마 이 부분만큼 개인의 생각여하에 따라 완전히 바뀌기 쉬운 부분은 없을 것이다. 책에는 다음과 같은 예가 있다.

어떤 대학의 실험실에서 두 그룹의 쥐를 대상으로 실험하였다. 쥐들을 바닥에 전선이 깔린 우리에 놓았다. 전기가 흐르면 쥐들은 전기충격을 받는다. 한 그룹은 전기충격을 그대로 받았지만 다른 그룹은 스위치가 있어 쥐들이 전기충격을 차단할 수 있었다. 두 번째 그룹의 쥐들은 전기충격에 대한 통제력을 가진 셈이다. 실험의 결과는 다량의 전기충격에도 불구하고 통제력을 가진 쥐는 좋은 건강상태를 유지하나 통제력이 없는 쥐들은 위궤양이 발생하고 털이 빠지는 등의 증상을 보이며 건강상태가 좋지 못했다고 한다. 동일한 시간에 같은 양의 충격을 주어도 두 그룹의 차이는 매우 뚜렷했다는 것이다. 유사한 다른 실험의 결과도 같았는데 제어할 수 없는 스트레스를 받는 쥐들의 실험결과는 면역력이 떨어지고 발병률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사람에 대해서도 실험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실험의 대상자는 시끄러운 소리가 나는 환경에서 문제를 풀었다. 한 그룹은 소리에 대한 통제력이 없고 다른 그룹은 스위치를 누르면 소리를 줄일 수 있는 상황에서 실험이 진행됐다고 한다. 결과는 통제력이 없는 그룹은 통제력을 가진 그룹에 비해 5배나 적은 문제밖에 풀 수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통제력을 가졌다는 그룹은 스위치를 보통 1회밖에 사용하지 않았으나 통제력을 가졌다는 느낌이 이러한 차이를 가져왔다. 성적에 영향을 미친 것은 시끄러운 소리가 문제가 아니라 원할 때 소리를 끌 수 있다는 생각을 갖는 것, 바로 그런 느낌이었다. 한 가닥의 느낌이나 믿음, 그 차이가 이렇게 다른 결과를 몰고 올 수 있는 것이다! 작은 통제력을 갖는 느낌, 그 작은 스위치 하나가 완전히 다른 결과를 갖고 온다.

통제력은 심리학에서 마술에 비하곤 한다. 이른바 통제력을 갖는다는 것은 생존의 메커니즘과 깊은 관계가 있다. 통제력을 가진다는 작은 사실 하나만으로 스트레스에 견디는 힘을 증가시킨다. 그것이 실제이든 허구적인 요소가 있든 간에 통제력은 마술적인 힘을 발휘한다. 수 억년 동안 존재했던 자연의 메커니즘은, 모든 일이 합리적으로만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오늘날에도 생체와 생물계에 그대로 작용한다. 간단한 믿음이나 느낌만으로도 몸과 마음은 다르게 움직인다. 불안이나 고통과 스트레스에 대한 강력한 대처방법의 하나는 통제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믿음과 통제의 스위치를 누르는(때로는 만드는) 노력이다. 통제의 노력을 포기하면 얼마 후 우리 몸 안에 있는 다른 메커니즘이 개체가 고통없이 소멸할 수 있도록 더욱 무기력하고 고통에 둔감한 상태로 몰고 간다.

우리 사회는 5~6년 전부터 인터넷 보급과 통신의 폭발적 증가를 경험하였다. 그리고 사회와 경제적 환경 역시 큰 변화를 겪었다. 갑자기 모든 것이 더 빨라지고 복잡해지면서 사회라는 유기체의 모습과 기능이 본질적으로 변하기 시작하였다. 그 동안 쌓여온 모든 변화가 폭발하듯이 세상은 눈에 띄게 변하고 있다. 사회의 신경망이 바뀌고 사람들도 바뀐 것이다. 어쩌면 살기가 더 어려워진 것 같은 사회에서 개인의 무력감은 커져갈 수도 있다.

사람들은 적응을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하게 되고 그 시도 후에는 좌절을 겪는다. 도저히 적응할 수 없을 것 같은 느낌 속에서 사람들은 계속 새로운 스트레스와 만난다. 몇 년 전의 통계에 의하면 금전 문제와 직장 상사와의 대인 관계가 스트레스의 주 원인이었으나 그 위에 테크놀러지 시대의 새로운 스트레스가 더 추가되고 있다. 새로운 스트레스의 대표적인 예는 정보의 과부하와 시간의 부족이다.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막연한 불안이 있다. 정보의 처리시간과 양에 짓눌리면 안 되고 살아남아야 한다. 하지만 사람들의 몸과 마음은 ‘정보의 홍수’와 ‘즉각 처리’에 익숙하지 않았고 지금도 그렇다.

리더십과 희망
사람의 가장 중요한 생존 메커니즘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불안(anxiety)이고 하나는 공격성(aggression)이다. 자기의 능력으로 감당이 안 되는 중요한 문제는 생존본능을 자극하여 불안을 가져온다. 불안이 해소될 수 없는 좌절의 상황은 공격성의 표출로 이어진다. 이 상황에서 답이 있어야 한다면 통제력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통제력과 내부의 힘을 만들어 내기 위해 적개심이나 악마적인 타겟을 만들기도 했다). 통제력이 없다면 통제감이나 자신감이라도 가져야 한다.

개인뿐만 아니라 조직도 통제나 통제 가능할 것 같은 느낌을 원한다. 어지러운 상황이거나 혼란스러운 상황이라면 더더욱 조직은 리더십을 원한다. 특별히 논리적으로 완벽한 것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방향과 통제를 원한다. 무엇인가 일이 잘 되어갈 것 같은 느낌, 바로 비전과 희망이다(이른바 『루시퍼 원리』의 용어를 빌리면 초 유기체의 자원을 선행하여 이동시켜야 한다). 과거의 탁월한 지도자로 불리는 사람들은 비전의 제시에 뛰어났다.

현대 사회는 언제나 혼란스럽고 정보 홍수와 급급한 삶에 쫓기는 현대인들에게 비전과 방향 제시는 절대적이다. 리더십에 의해 사회는 바뀌고 때로는 논리 이상의 것을 이루곤 한다. 그 리더십이 옳건 그르건 사람들은 통제력의 마력에 순응한다. 그래서 역사는 급선회하곤 했다. 어차피 답은 만들어 가야 하는 것이므로 반드시 해답을 현재의 잣대에 맞추기만 해서는 안 될지도 모른다(과거에는 상황을 통제할 수 없더라도 통제할 수 있는 느낌을 얻기 위해 사람들은 의식을 거행하고 굿을 하곤 했다. 다시 살펴보니 어느 정도 근거가 있어 보인다. 스트레스를 극복하는 힘은 바로 사람들 자신의 상황통제를 위한 노력이다).

열심히 찾는다면 실낱같은 가능성의 단초는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보인다. 보지 않으려 하면 보이지도 않을 것 같은 저 멀리 있는 등대나 육지와 같이 가능성과 좋은 예감을 갖고 보면 희미하게 빛나고 있을 뿐이다. 어떤 때에는 덧없는 목표에 얽매이기도 하고 틀린 답을 찾기도 하지만 언제나 답이나 답 비슷한 것을 만들어 내야 한다.

필자가 장황하게 사기열전의 세객들이나 리더십을 끄집어 낸 것은, 바로 답이나 답 비슷한 것이 고착되어 보이는 상황에서는 오히려 적극적인 발언과 상황주도가 바로 유효적절한 상황 해결책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열심히 주장하고 그에 대한 확신을 갖는다면 다른 사람들도 그 영향권에 들어오게 되고 더 중요한 피드백을 얻게 될 것이다. 때로는 제기된 문제 자체를 바꿀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들은 물론 과거에 현자들이 다 했던 이야기지만 설명의 방법을 바꾸고 책을 인용하여 컬럼에 써 본 것이다.

최근 필자는 한 강연에서 ‘이제는 희망을 이야기하자’라는 부제로 개발자들에게 좋은 예감을 갖도록(아니면 좋은 예감을 갖는 일을 갖도록) 당부했다. 다른 사람들도 그만큼 자신이 없기 때문에 개발자가 자기 자신을 개발하기 위해 미리 필요한 선취적인 행동에 풀베팅하도록 당부한 것이다. 리더십과 희망이라는 것은 누구나 바라고 있는 것이고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더 바라고 있을 수도 있다는 간단한 사실을 이야기했다. 원래 리더십과 희망은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나온 것이다. 새로운 밈의 지도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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